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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외- 파리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다
    매일 2024. 7. 18. 22:54

    <지갑 잃어버린 썰>
     
     

    와! 도파민 싹 돈다!


    그 날은 하늘이 맑고 이상하게 운수가 좋더라니.
     
    귀가 후 엄마랑 영통도 하고
    창문 활짝 열고 낮잠도 잔 날
    오후 일곱 시
    지갑이 없다는 것을 깨닫다
     


    개가티 혼비백산하여 방을 뒤집었다

    코딱지만한 방에 발 디딜 틈 없는 공용공간(이라고 쓰고 일방통행 복도라고 읽는다) 속 더 찾을 곳은 없었음...

    지갑...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걸린 시간 30분...


     


    일단 닥치는대로 꽁봉숑 역 가서 지갑을 찾았다.
    당연히 없음
     
    파리에서 지갑 잃어버린 거 하나만으로도 개망했는데
    진짜 족된 부분이 뭔지 알우?
    지하철<에서 잃어버렸다는거^^...
    ⬆️
    저 부분이 진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마지막 희망 0.01
    프로까지 갈기갈기 개박살을 내버림
     


    역무원께서 도와주셔서 인터넷 신고까지 하고(의미 x)
    대사관에 전화했다(의미 x)
    대사관 직원분의 너무나 안타까운 한마디...
     
    '파리에서요... 99프로는 못 찾아요...'
     
    그는 현실적인 조언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카드부터 당장 막으라고 해주었다.
    T는 그의 조언이 아주 속시원했어요.

    그러나 집에 오자 눈물이 났다.
    그 안에는 엄마가 준 카드랑 아빠가 준 카드
    고3때 김은헤 끌고가서 (무려 조퇴했던 걸로 기억...) 만든 민증
    숙대 학생증
    그런 것들이 있었다.
     

    하 그리고 40만원 선결제한 파리 교통카드...
    저샛기가 내 마음을 너무나 쓰리게 했다.




     

    그런데 왜 그런 느낌 있잖아
    정말... 정말 잃어버렸을리 없는데?
    믿기지 않는게 아니라 진짜로 현실적으로 잃어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교통카드 찍고 지하철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1. 가방을 잠근다
    2. 가방을 앞으로 멘다
    3. 지하철역에서 빠져나가면 그제서야 가방을 뒤로 멘다
     
    근데 지갑이 없어지는게 이게 물리적으로 되나?
     
     
    그러나 물리적으로: 지갑은 내 곁에 없음
    어이: 나도 없을게




    그러다 머리를 스쳐간 생각 하나
     
    오늘 이상하게 누군가 집 문을 두드렸었다.
    절대 열어주지 말라는 옆방언니(출근중)&원장님 말에 이악물고 무시했는데
    설마... 설마 이것때문에?
    근데 이거야말로 말이 안 되는데…
     




    그러나 그게 말이 됐습니다.
    대문을 열자 발견한 포스트잇
     
    지갑은 사실... 윗집 아저씨께서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사건의 전말

    1. 대문(번호키)과 중문 사이에서 가방을 열고 키를 꺼냄
    2. 이 과정에서 지갑이 떨어짐<<<wow!
    3. 에어팟을 꼽고있던 (정신나간)내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중문을 통과함
    4. 대문과 중문 사이에 홀로 떨어져있던 내 지갑을 6층 아저씨께서 발견
    5. 지갑 속 학생증을 발견, 5층에 사는 한국인 여자애를 기억해냄
    6. 아저씨께서 우리 집 방문 -> 내가 무서워서 문 안열어줌
    7. 포스트잇 남김
    8. 다섯 시간 후 이주팽 울면서 지갑 찾아 삼만리
     
     

    1프로의 삶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늘 궁금했다.
     
    손에 든 종이봉투마저 낚아챈다는 파리
    거기서 지갑을 잃어버린 내가 지갑을 찾을 확률
     
    엄마가 준 카드와 아빠가 준 카드를 찾고
    민증과 숙대 학생증이 다시 나에게 올 확률
    1원도 잃지않고 아무것도 재발급 받지 않고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찾을 수 있을 확률
     
    로또에 당첨되고 병이 씻은 듯이 낫고 그런 거에 비하면 미미할 지라도
    나에게 이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지갑을 다시 되찾기까지 행정 처리를 도와준 역무원,
    해외까지 보내놨더니 일주일만에 지갑 잃어버린 자식(샛기)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엄마,
    무엇보다 지갑을 주워주고, 포스트잇을 써붙여가며 되찾아주고자 했던 6층 아저씨.
     
    1%의 기적은 사람으로 만들어지는구나.

     

    실질적인 도움이 됐고 안 됐고의 문제가 아니다.
    연고도 없고 힘도 없는 환경에서 닥친 문제는 손톱만한 크기여도 나를 파도마냥 덮친다.
    (파리에서 지갑 잃어버린 건 손톱만한 크기의 문제는 아니긴 했다.)
    앞이 막막하고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 필요한 건 좋은 사람이구나.
    기적은 좋은 사람이 만들어주는 거였나보다.
     
    내가 한거라고는 지갑 처떨어뜨리기
    처울기
    모두를 걱정시키기!^^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
    명쾌한 한 방이 아니더라도 막막한 마음에 작은 빛이라도 될 수 있는.
    서늘하고 날 선 마음으로 남을 해치는 사람만은 절대 되고 싶지 않다.
    태어나기를 무지 선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노력하며 살아야겠지.
    그래도 노력하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
     
     

    이상 지갑 잃어버리고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은 24세 이주팽의 참회록 끝.



    다신 잃어버리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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